우리 집 셀러는 칸마다 병이 겹겹이 들어차 있어요.
그중 맨 윗칸에는 24병 정도가 있는데, 대부분 부르고뉴 와인이에요.
부르고뉴가 윗칸에만 있는 건 아니고 아래 칸에도 섞여 있어요.
선반에 붙은 이름표는 예전에 제가 직접 만들어 붙인 거예요.
처음엔 병마다 붙였는데 와인이 너무 많아져서 지금은 다 못 붙이고 있어요.
그래서 뭐가 있는지 보려면 한 병씩 꺼내 봐야 하는데, 오늘 꺼내 보다가 같은 마을 와인 두 병이 눈에 걸렸어요.
둘 다 라벨에 Vosne-Romanée(본 로마네)가 적혀 있는데, 한 병은 2006년, 한 병은 2020년이에요.
식탁에 나란히 세워 보니 같은 동네 와인인데도 생긴 게 완전히 달라서 기록해 둡니다.

본 로마네가 어떤 곳이길래
프랑스 부르고뉴, 그중에서도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코트 드 뉘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에요.
와인 좋아하는 분들이 꿈의 와인이라고 부르는 로마네 콩티가 바로 이 마을에서 나와요.
그래서 라벨에 본 로마네라는 글자만 있어도 한 번 더 보게 되는 곳이고요.
품종은 거의 다 피노 누아예요.
부르고뉴 레드는 같은 품종이어도 어느 마을, 어느 밭에서 났느냐에 따라 급이 나뉘어요.
| 등급 | 라벨에 적히는 것 | 오늘 두 병 |
|---|---|---|
| 그랑 크뤼 (특등급 밭) | 밭 이름만 크게 | - |
| 프르미에 크뤼 (1등급 밭) | 마을 이름 + 1er Cru + 밭 이름 | 레 쉬쇼 2006 |
| 마을급 (빌라주) | 마을 이름만 | 그로 프레르 에 쇠르 2020 |
라벨에 1er Cru가 있느냐 없느냐, 이게 두 병의 가장 큰 차이예요.
왼쪽 병, 프리외레 로크 레 쉬쇼 2006

앞면만 보면 무슨 와인인지 알기 어려워요.
흰 띠에 Les Suchots 2006만 적혀 있고, 그 아래 나뭇잎 두 개와 빨간 점 세 개가 그려져 있는 게 전부예요.
처음 보는 사람은 와인 라벨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순해요.
자세한 정보는 뒷면에 다 있어요.

- Vosne-Romanée 1er Cru Les Suchots → 본 로마네 마을의 1등급 밭 '레 쉬쇼'
- Domaine Prieuré Roch → 만든 곳, 프리외레 로크
- 750ml
그 위에 일본어 라벨이 한 장 더 붙어 있어요.
후쿠오카에 있는 수입사 이름과 함께 '果実酒(과실주)', 알코올 13도라고 적혀 있어요.
일본으로 수입됐던 병이라는 표시예요.
병목에도 같은 그림이 찍혀 있는데, 이게 이 도멘의 로고예요.

프리외레 로크는 어떤 곳
1988년에 앙리 프레데릭 로크가 세운 도멘이에요.
이분이 로마네 콩티를 만드는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RC)의 공동 대표였어요.
부르고뉴에서 이름난 르루아 집안의 랄루 비즈 르루아가 이모예요.
'프리외레'는 수도원이라는 뜻이에요.
자기 이름만 붙이면 너무 거창해 보여서, 보르도 와인 상자에서 본 이름을 따와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포도를 줄기째 발효하고 이산화황(보존제)을 아주 적게 쓰는, 손을 덜 대는 방식으로 유명해요.
라벨이 이렇게 단순한 것도 그런 분위기와 닮은 것 같아요.
레 쉬쇼 밭은 특등급 밭인 에셰조, 로마네 생 비방과 붙어 있어요.
1등급인데 특등급 바로 옆이라 본 로마네 1등급 밭 중에서도 이름이 자주 나오는 곳이에요.
오른쪽 병, 그로 프레르 에 쇠르 본 로마네 2020
이쪽은 라벨이 정반대예요.
금색 잔(컵) 그림이 크게 들어가 있고 빨간 캡슐에도 같은 잔이 새겨져 있어요.
목에 붙은 동그란 스티커에는 2020이 금박으로 찍혀 있고요.
라벨에는 Vosne-Romanée만 있고 1er Cru가 없어요.
마을 안 여러 밭의 포도로 만든 마을급 와인이라는 뜻이에요.
그로 프레르 에 쇠르는 이름 그대로 '그로 남매'라는 뜻이에요.
1963년 본 로마네의 그로 집안 남매, 귀스타브와 콜레트가 물려받은 밭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조카 베르나르 그로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리슈부르, 에셰조, 그랑 에셰조, 클로 드 부조 같은 특등급 밭도 가지고 있는 집이에요.
본 로마네에는 그로 성을 쓰는 도멘이 여러 개 있어요(안 그로, A.F. 그로, 미셸 그로).
그래서 라벨에서 Frère & Sœur까지 꼭 확인해야 헷갈리지 않아요.
나란히 놓고 보니
| 레 쉬쇼 2006 | 그로 프레르 에 쇠르 2020 | |
|---|---|---|
| 등급 | 1등급 밭 | 마을급 |
| 만든 곳 | 프리외레 로크 | 그로 프레르 에 쇠르 |
| 라벨 | 그림 하나, 글자 거의 없음 | 금색 잔, 필기체 마을 이름 |
| 캡슐 | 투명 캡슐에 로고 | 빨간 캡슐에 금색 잔 |
| 나이 | 올해로 20년 | 6년 |
같은 마을, 같은 피노 누아인데 만든 사람 취향이 라벨에 그대로 보여요.
한쪽은 최대한 덜어낸 느낌이고, 한쪽은 전통 부르고뉴 라벨 그대로예요.
그로 프레르 에 쇠르 본 로마네는 어릴 때도 마실 수는 있지만, 7~10년 정도 두면 더 부드러워진다는 평이 많아요.
2020이면 2027년 이후가 그 시기예요.
두 병 다 아직 따지 않아서 맛 이야기는 열게 되면 따로 남길게요.
라벨 볼 때 이것만 기억하세요
- 마을 이름 뒤에 1er Cru가 있으면 1등급 밭, 없으면 마을급
- 밭 이름(Les Suchots 같은)이 같이 적혀 있으면 그 밭 포도만 쓴 것
- 같은 성을 쓰는 생산자가 많으니 Domaine 뒤 이름 전체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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