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 정리하다가 오늘은 이 병을 한참 들고 있었어요. 도멘 페블레 마지 샹베르탱 그랑크뤼 2018.

솔직히 말하면 아직 안 땄어요. 따려고 꺼낸 게 아니라, 라벨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꺼냈어요. 부르고뉴 라벨은 보르도처럼 큰 성 그림이 있는 게 아니라 글자만 빼곡해서 그냥 넘기기 쉬운데, 이 병은 숫자가 유난히 많이 적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숫자 순서대로 하나씩 짚어 봤어요.
이 병은 [어디서 / 언제 샀는지 한두 줄] 셀러에 들어온 와인이에요.
1825 — 페블레가 시작된 해

라벨 맨 위 사자 문장 양옆에 Depuis 1825라고 적혀 있어요. 프랑스어로 "1825년부터"라는 뜻이에요.
페블레는 1825년 뉘 생 조르주에서 피에르 페블레가 와인 하우스를 차리면서 시작됐대요. 처음엔 남의 포도를 사서 와인을 만드는 네고시앙이었는데, 19세기 후반 2대째에 꼬르통 샤를마뉴 같은 좋은 밭을 사들이면서 직접 포도를 키우는 도멘이 됐다고 해요.
지금은 부르고뉴에서 가장 큰 가족 도멘으로 꼽혀요. 갖고 있는 포도밭이 120헥타르쯤 되고, 페블레 이름으로 나오는 와인 6병 중 5병은 자기 밭 포도로 만든대요.
9 — 이름에 '샹베르탱'이 붙은 그랑크뤼 개수
마지 샹베르탱(Mazis-Chambertin)은 부르고뉴 주브레 샹베르탱 마을에 있는 그랑크뤼 밭 이름이에요.
이 마을엔 이름에 샹베르탱이 붙은 그랑크뤼가 9개나 있어요. 샹베르탱, 샹베르탱 클로 드 베즈, 샤름, 마조이에르, 샤펠, 그리오트, 라트리시에르, 루쇼트, 그리고 마지.
이 중 대장은 샹베르탱과 클로 드 베즈인데, 마지는 바로 그 클로 드 베즈 위쪽에 붙어 있어요. 그래서 평가도 그 두 밭 다음으로 높게 치는 편이고, 마지 안에서도 위쪽(마지 오)을 더 좋게 본대요.
1.2 — 페블레가 마지에 가진 밭 크기(헥타르)
마지 샹베르탱 밭 전체가 9헥타르 남짓이에요. 축구장 열 개를 조금 넘는 넓이를 주인 20~30명이 조각조각 나눠 갖고 있어요.
그중 페블레 몫이 위쪽·아래쪽 합쳐 1.2헥타르. 이 밭에서는 가장 큰 편에 속해요. 마지 샹베르탱 하면 페블레가 기준처럼 거론되는 게 이 때문인 것 같아요.
2018년 빈티지는 원래 갖고 있던 밭에 새로 인수한 밭 포도를 합쳐서 만들었대요.
7,210 그리고 0422 — 이 병의 번호

제가 이 병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빈티지 아래에 손글씨 같은 필기체로 "De cette récolte, il a été produit 7210 Bouteilles"라고 적혀 있어요. 이 수확으로 7,210병을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그 밑에 N° 0422. 그러니까 이 병은 2018년 마지 샹베르탱 7,210병 중 422번째 병이에요.
맨 아랫줄 "Mis en bouteille au Domaine à Nuits-Saint-Georges"는 뉘 생 조르주에 있는 도멘에서 직접 병입했다는 뜻이고요.
번호가 붙어 있으니 괜히 더 못 따겠어요. 7,210병이 많아 보여도 전 세계로 흩어지는 걸 생각하면 같은 번호는 이 세상에 이 병 하나뿐이니까요.
13.5 — 알코올 도수

뒷면을 돌려 보면 일본어가 잔뜩 있어요. 도쿄의 수입사(LUC Corporation)가 붙인 라벨이에요. 일본으로 들어간 병이 우리 집까지 온 거죠.
일본어 라벨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만 정리하면 이래요.
| 항목 | 라벨 내용 |
|---|---|
| 품종 | 피노 누아 (부르고뉴 레드라 따로 안 적혀 있음) |
| 용량 | 750ml |
| 원산지 | 프랑스 부르고뉴 |
| 알코올 | 13.5% |
| 첨가물 | 산화방지제(아황산염) |
| 수입 | 일본 도쿄 LUC Corporation |
13.5%면 레드와인 치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보통 도수예요.
14~16 — 오크통에서 보낸 개월 수
이 와인은 오크통에서 14~16개월 숙성하고, 그중 3분의 2 정도는 새 오크통을 쓴대요.
2018년 마지 샹베르탱을 마셔본 해외 평가들을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아직 닫혀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카시스, 산딸기, 감초 같은 향에 탄닌이 촘촘하다는 평이고요. 만든 사람도 병입하고 최소 5년은 지나야 풀린다고 했대요.
2018년 수확이니 병입은 2020년 무렵. 계산하면 이제 막 마셔볼 만한 시점에 들어선 거예요. 그래도 그랑크뤼는 10년 넘게 두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좀 더 재워 둘 생각이에요.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 판매가는 찾기 어려웠어요. 해외 기준으로 보면 스위스 와인숍에서 한 병에 198스위스프랑(세금 별도), 영국에선 6병 한 상자에 800파운드 선에 거래돼요.
데일리로 따기엔 확실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셀러에서 꺼냈다가 사진만 찍고 다시 넣는 와인 중 하나예요.
다시 셀러로
라벨 숫자만 따라가 봐도 이 병이 어디서, 몇 병 중 몇 번째로, 얼마나 숙성돼서 왔는지 다 나와요. 부르고뉴 라벨이 어렵게 느껴지면 이렇게 숫자부터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많은 걸 알려줘요.
따는 날이 오면 그때 맛 이야기로 다시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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