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기념일 와인을 참 잘 모으는 사람이에요. 결혼한 2003년, 아들이 태어난 2004년. 이 두 해에 만든 와인이 눈에 띄면 하나씩 사다 셀러에 넣어두더라고요.
그런데 해마다 결혼기념일에 2003년을 하나씩 꺼내 마시다 보니 이제는 남은 게 몇 병 없어요. 올해 11월이면 결혼 23주년이니, 저희 와인도 어느새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올드 빈티지'가 됐네요.
오늘은 셀러 안쪽에 남아 있던 기념일 와인 두 병을 꺼내 사진을 찍어봤어요. 하나는 결혼한 해 와인, 하나는 아들 태어난 해 와인이에요.
2003년, 결혼한 해의 와인 — 샤또 앙젤루스

먼저 2003년 병이에요. 노란 라벨 가운데 큰 종이 그려져 있는 와인, 샤또 앙젤루스(Château Angélus)예요.
라벨을 위에서부터 읽어보면 이래요.
- ANGELUS : 와인 이름이에요. 앙젤루스는 '삼종기도', 하루 세 번 울리는 성당 종을 뜻해서 라벨에 종이 들어가 있대요.
- 1er Grand Cru Classé : 생테밀리옹 지역 등급에서 '1등급 그랑 크뤼'라는 표시예요.
- 2003 : 포도를 수확한 해, 빈티지예요. 저희 결혼한 해죠.
- Saint-Émilion : 프랑스 보르도 오른쪽 강변, 생테밀리옹 마을에서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이 샤또는 2012년에 생테밀리옹 등급에서 가장 높은 단계까지 올라갔다가, 2022년에 스스로 등급 심사에서 빠져서 화제가 됐던 곳이에요. 그래서 요즘 나오는 앙젤루스 라벨에는 이 등급 문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2003년 병에는 아직 '1er Grand Cru Classé'가 또렷하게 찍혀 있으니, 이것도 나름 그 시절 흔적이에요.

병을 돌려보면 뒷면에 일본어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 후쿠오카에 있는 수입사 이름이 적혀 있으니, 이 병은 일본을 거쳐서 저희 집까지 온 셈이에요. 알코올 도수는 13.5%, 용량은 보통 와인 한 병인 750ml예요.
2003년은 유럽에 기록적인 폭염이 왔던 해라서, 보르도 와인도 포도가 아주 잘 익은 해로 많이 얘기돼요. 그만큼 묵직하고 진한 스타일이 많다고 하고요. 남편 말로는 그레이트 빈티지라고까지 하긴 어려운 해라는데, 저희한테는 그런 평가보다 결혼한 해라는 게 먼저예요.
2004년, 아들 태어난 해의 와인 — 프레지덴셜 포르토 콜레이타

두 번째는 2004년 병이에요. 이건 와인이라기보다 포르투갈의 포트와인(Porto)이에요. 나무 상자에 밧줄 손잡이까지 달려 있어서, 보기만 해도 선물 받은 티가 나요.
사실 2004년 와인은 아들 성인식 때 여러 병을 한꺼번에 열어서, 남편이 모아둔 건 거의 다 마셨어요. 지금 남은 이 한 병은 선물로 받은 거예요.
아들이랑 같은 2004년생 친구가 있는데, 그 집 엄마가 그 무렵 와인에 막 재미를 붙였을 때였어요. 그 집에 놀러 갔다가, 아이들 태어난 해라 의미가 있어서 사뒀다면서 한 병을 나눠주더라고요. 아주 비싸고 귀한 와인은 아니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두 아이 얘기를 하면서 받은 병이라 저한텐 가격보다 그 마음이 더 크게 남아 있어요.
라벨을 읽어보면 이래요.
- Presidential : 브랜드 이름이에요. 만든 곳은 아래에 적힌 C. da Silva라는 포트와인 회사예요.
- PORTO : 포르투갈 도우루 지방에서 만든 포트와인이라는 뜻이에요.
- COLHEITA 2004 : '콜레이타'는 포르투갈 말로 '수확'이라는 뜻이에요. 2004년 한 해 포도로만 만들었다는 표시예요.
- Matured in wood / Bottled in 2021 : 나무통에서 숙성했고, 2021년에 병에 담았다는 뜻이에요.
- 20% Vol. : 도수가 20%예요. 일반 와인보다 훨씬 높아요.
여기서 제가 제일 신기했던 건 '2021년에 병입'이라는 부분이었어요. 2004년에 수확한 포도를 무려 17년 가까이 나무통에서 익히다가 병에 담은 거예요. 콜레이타는 원래 오크통에서 최소 7년 이상 숙성해야 이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나무통 숙성 포트와인은 병에 담은 뒤로는 더 익기보다는 그 맛이 그대로 유지되는 편이라, 오래 묵히기보다 마시고 싶을 때 여는 게 좋다고 해요. 도수가 높고 단맛이 있어서, 한 번 따도 일반 와인보다 오래 두고 조금씩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보통 캐러멜이나 견과류 같은 고소하고 달큰한 향이 난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열지 않아서 맛은 나중에 따로 남겨볼게요.
같은 '올드 빈티지'라도 두 병은 성격이 달라요

나란히 세워두고 보니, 같은 2003년과 2004년인데도 두 병은 완전히 다른 와인이었어요. 정리해 보면 이래요.
| 구분 | 샤또 앙젤루스 2003 | 프레지덴셜 포르토 콜레이타 2004 |
|---|---|---|
| 나라 | 프랑스 보르도 생테밀리옹 | 포르투갈 도우루 |
| 종류 | 레드와인 | 포트와인(주정강화 와인) |
| 도수 | 13.5% | 20% |
| 숙성 | 병 속에서 계속 익어감 | 나무통에서 익힌 뒤 2021년 병입 |
| 마시는 법 | 식사와 함께 한 잔씩 | 식후에 작은 잔으로 조금씩 |
| 우리 집 의미 | 결혼한 해 | 아들 태어난 해 |
레드와인은 병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맛이 바뀌니까, 오래된 병일수록 언제 열지가 늘 고민이에요. 반대로 콜레이타 포트는 이미 통에서 충분히 익혀서 나온 거라, 그런 걱정이 덜한 편이고요.
기념일 와인, 오래 두려면 이것만은 챙겨야 해요
20년 넘게 두는 와인은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가 맛을 좌우해요. 저희도 셀러에 넣어두긴 했지만, 처음 모을 때 이런 걸 알았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것들을 정리해 볼게요.
- 온도는 일정하게 : 와인 보관은 보통 12~15도 정도를 권해요. 온도보다 더 중요한 건 들쭉날쭉하지 않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베란다나 주방 찬장처럼 계절 따라 온도가 크게 바뀌는 곳은 피하는 게 좋아요.
- 코르크 와인은 눕혀서 : 코르크가 마르면 틈으로 공기가 들어가요. 병을 눕혀두면 와인이 코르크를 적셔줘서 오래 버텨요.
- 빛과 진동은 멀리 : 햇빛이나 형광등 빛, 냉장고 옆처럼 계속 떨리는 곳도 오래 묵히는 와인한텐 좋지 않대요.
- 포트와인은 세워둬도 괜찮아요 : 콜레이타 같은 나무통 숙성 포트는 손으로 뽑는 T자 마개가 달린 경우가 많아서 세워서 보관하는 편이에요. 도수가 높은 술이라 마개가 술에 계속 닿아 있으면 오히려 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상자째 두면 빛도 막아주고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결국 '조용하고 서늘한 데 눕혀두기'가 전부네요. 거창한 셀러가 없어도 이것만 지키면 기념일 와인 한두 병은 충분히 오래 둘 수 있어요.
남은 두 병은 언제 열까
아직 정하진 않았어요. 올해 11월이 결혼 23주년이니 2003년 앙젤루스를 그때 열까 싶다가도, 몇 병 안 남은 거라 아껴두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오래된 병은 코르크가 약해져 있을 수 있어서, 열게 되면 천천히 조심해서 따야겠다는 것만 생각해 두고 있어요.
2004년 포트는 나무통에서 이미 충분히 익혀서 나온 거라, 오래 아낄 필요는 없다고 해요. 아들이랑 의미 있는 날 같이 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모아두기만 할 때는 그냥 병이었는데, 하나씩 꺼내 사진 찍고 라벨을 읽다 보니 그 해 우리 집 이야기가 같이 따라 나오더라고요. 기념일 와인을 모으는 재미가 결국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혹시 결혼한 해나 아이 태어난 해 와인을 하나 사두고 싶으신 분들은, 오래 보관할 거라면 레드와인을, 언제 열지 부담 없이 두고 싶다면 콜레이타 같은 나무통 숙성 포트와인도 한번 찾아보세요.
이 글은 저희 집 셀러에 있는 와인을 직접 보고 쓴 개인 기록이에요. 와인 정보는 라벨 표기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셀러에서 꺼낸 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코스트코 와인 장보기, 2023 보르도 그랑 크뤼 두 병이랑 남편 데일리 세 병 샀어요 (0) | 2026.10.13 |
|---|---|
| 페로 미노 샹베르탱 그랑 크뤼 2015, 나폴레옹이 아꼈다는 밭의 와인을 꺼냈습니다 (1) | 2026.10.10 |
| 샤또 오존 2001, 일본 여행길에 사 온 생테밀리옹 와인 라벨 읽기 (1) | 2026.10.09 |
| 콜긴 와인 IX 에스테이트 2005, 생일날 마신 나파 밸리 컬트 와인 이야기 (1) | 2026.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