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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에서 꺼낸 와인

샤또 오존 2001, 일본 여행길에 사 온 생테밀리옹 와인 라벨 읽기

by 코르크맘 202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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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셀러를 열면 병마다 투명한 비닐이 씌워져 있습니다. 남편이 한 병 한 병 씌워 둔 겁니다. 셀러 안은 습도가 높아서 종이 라벨이 젖으면 얼룩이 지거나 가장자리부터 들뜨고, 심하면 아예 떨어져 나가거든요. 라벨이 상하면 무슨 와인인지 알아보기도 어렵고, 나중에 값어치도 떨어집니다.

오늘 꺼낸 샤또 오존(Château Ausone) 2001도 그 비닐을 입고 있었습니다. 포도를 거둔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라벨이 이만큼 깨끗한 건 다 그 비닐 덕분입니다.

이 병은 일본 여행을 갔다가 사 온 와인입니다. 그래서 뒷면을 돌리면 한글 스티커 대신 일본어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앞면은 프랑스, 뒷면은 일본, 그리고 지금은 부산 저희 집 셀러. 병 하나가 꽤 먼 길을 왔습니다.

샤또 오존 앞면 라벨, 위에서부터 한 줄씩

맨 위의 그림은 샤또 건물과 그 앞 포도밭입니다. 옛날 동판화처럼 가는 선으로 그려져 있어서, 라벨만 봐도 오래된 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CHÂTEAU AUSONE은 이 와인을 만든 곳이자 와인 이름입니다. 오존이라는 이름은 4세기 보르도 출신의 로마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아우소니우스(Ausonius)에서 왔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이 근처에 포도밭을 갖고 있었고, 지금 샤또가 그의 별장 터 위에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와인 이름 하나에 1,600년이 넘는 이야기가 붙어 있는 셈입니다.

SAINT-ÉMILION은 지역 이름입니다. 보르도에서도 강 오른쪽에 있는 마을로, 지난 글에서 본 샤또 발랑드로와 같은 동네입니다.

1er GRAND CRU CLASSÉ "A"는 등급입니다. 생테밀리옹 등급에서 가장 높은 단계라는 뜻인데, 이 "A"에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아래에서 이어서 쓰겠습니다.

2001은 빈티지, 포도를 수확한 해입니다. 그리고 맨 아래 FAMILLE VAUTHIER Propriétaire는 보티에 가문이 이 샤또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보티에 가문이 대를 이어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라벨에 남은 "A", 지금은 없는 이름입니다

생테밀리옹 등급은 1955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대략 10년마다 다시 심사해서 등급을 새로 매깁니다. 보르도 1855년 등급이 170년 가까이 거의 그대로인 것과는 다릅니다.

이 등급 맨 꼭대기인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 A는 처음 만들어질 때 딱 두 곳뿐이었습니다. 샤또 오존과 샤또 슈발 블랑입니다. 2012년 심사 때 샤또 앙젤뤼스와 샤또 파비가 A에 올라오면서 네 곳이 됐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 오존과 슈발 블랑이 다음 심사에 아예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심사가 포도밭과 와인 맛보다 인지도나 홍보, SNS 활동 같은 것에 점점 더 무게를 둔다는 이유였습니다. 오존의 양조 책임자 폴린 보티에도 테루아와 시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다는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이듬해 앙젤뤼스까지 빠지면서, 2022년에 나온 새 등급표에는 세 곳의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2001년 병 라벨에 적힌 "A"는 그 시절 등급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등급표에서는 빠졌어도 와인이 달라진 건 아니고, 지금도 생테밀리옹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꼽힙니다. 처음엔 그냥 등급 표시인 줄 알았는데, 블로그를 쓰려고 찾아보다가 이런 사연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뒷면에는 프랑스 라벨과 일본 스티커가 같이

뒷면 위쪽은 원래 프랑스 라벨입니다. 1er Grand Cru Classé, Saint-Émilion Grand Cru가 한 번 더 적혀 있고, 13.5% vol은 알코올 도수, 75cl은 750ml입니다. Mis en bouteille au château는 샤또에서 직접 병에 담았다는 뜻입니다.

그 아래 흰 스티커가 일본 수입사가 붙인 표시입니다. 일본어를 몰라도 한자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갑니다.

CHオーゾンヌ 01은 샤또 오존 2001을 일본식으로 줄여 쓴 이름입니다. 果実酒는 과실주로, 우리나라 한글 스티커의 식품유형 과실주와 같은 말입니다. 容量 750ml은 용량, 原産国 フランス는 원산지 프랑스입니다. 輸入者 옆에는 오사카에 있는 수입 회사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도수 표시입니다. 프랑스 라벨에는 13.5%라고 딱 적혀 있는데, 일본 스티커에는 14도 미만이라고 범위로만 적혀 있습니다. 같은 병인데 나라마다 표시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맨 아래 お酒は20歳になってから는 술은 스무 살이 되고 나서라는 뜻입니다. 일본은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스무 살이라 이 문구가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스티커의 19세 미만 판매 금지 문구와 같은 역할입니다.

포도는 반반, 양은 아주 적게

샤또 오존의 포도밭은 7헥타르 남짓입니다. 보르도의 이름난 샤또들 가운데서는 작은 편입니다. 포도는 카베르네 프랑과 메를로를 거의 반반씩 심습니다. 생테밀리옹은 원래 메를로를 많이 쓰는 동네인데, 오존은 카베르네 프랑 비중이 높은 게 특징으로 꼽힙니다.

만드는 양도 적어서, 세컨드 와인인 샤펠 도존(Chapelle d'Ausone)까지 합쳐도 한 해 2천 상자를 조금 넘는 정도라고 합니다. 한 상자가 12병이니 많아야 2만 5천 병 안팎입니다.

맛은 저희가 아직 이 병을 따지 않아서 평론가들 말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2001 빈티지는 평가가 꽤 엇갈립니다. 로버트 파커는 2004년에 98점을 주면서 꽃향기와 블랙베리, 카시스 향이 진하면서도 우아하다고 했고, 마시기 좋은 시기를 2012년부터 2050년 이후까지로 봤습니다. 반면 잰시스 로빈슨은 끝맛이 너무 마른다며 박하게 평가했습니다. 같은 와인을 두고 이렇게 말이 갈리는 것도 와인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사 온 와인, 이것만은 챙겨 두세요

여행 가서 와인을 사 올 때 저희가 지금까지 겪어 보고 챙기는 것들입니다.

면세 한도부터 확인합니다. 예전에는 술은 2병까지만 면세였는데, 지금은 병 수 제한 없이 합계 2리터, 400달러 이하까지 면세로 바뀌었습니다. 750ml 와인이면 두 병까지는 2리터 안에 들어가고, 세 병부터는 넘습니다. 기준은 바뀔 수 있으니 떠나기 전에 관세청 안내를 한 번 보시는 게 좋습니다.

라벨을 지켜 줍니다. 가방 안에서 병끼리 부딪히거나 습기에 젖으면 라벨이 제일 먼저 상합니다. 저희 집처럼 투명 비닐을 한 겹 씌워 두면 운반할 때도, 셀러에 넣어 둘 때도 라벨이 깨끗하게 남습니다.

스티커는 떼지 않습니다. 일본어 스티커가 낯설어도 그대로 두는 게 좋습니다. 어디서 들여온 병인지 알려주는 표시라, 나중에 이 병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이 스티커가 답을 줍니다.

셀러에서 꺼내 사진을 찍고 라벨을 한 줄씩 읽다 보니, 일본 여행길에서 이 병을 골라 들고 오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따는 날이 오면 그날 맛은 이 블로그에 꼭 적어 두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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