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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입문 상식

보르도 5대 샤또, 마시지 않고 셀러에 모아둔 다섯 병 이야기

by 코르크맘 2026.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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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에 마시지 않고 모아두기만 하는 병들이 있어요.
라피트, 라투르, 마고, 오브리옹, 무통.
흔히 보르도 5대 샤또라고 부르는 다섯 곳이에요.

이 다섯 병은 마시려고 둔 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모으는 용도였고, 지금도 그냥 셀러에 누워 있어요.

오늘은 오랜만에 다섯 병을 다 꺼내서 나란히 세워봤어요.

 

1. 5대 샤또가 뭐냐면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나폴레옹 3세가 보르도 와인을 소개하려고 등급을 매기게 했어요.
당시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나눴는데,
이게 지금까지 쓰이는 '1855 그랑 크뤼 클라세'예요.

여기서 1등급(프르미에 그랑 크뤼)을 받은 곳이 처음엔 네 곳이었어요.
라피트, 라투르, 마고, 오브리옹.

그리고 1973년에 무통이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가면서 다섯 곳이 됐어요.
170년 가까이 된 이 등급표에서 등급이 바뀐 건 사실상 이때 한 번뿐이에요.

얼마 전 손님 초대 때 땄던 샤또 탈보가 같은 등급표의 4등급이에요.
탈보도 충분히 좋은 와인인데, 그 위에 이 다섯 곳이 있는 거예요.

2. 라피트 로칠드 2006

 

다섯 병 중에 라벨이 제일 얌전해요.
흑백 판화 같은 그림에 샤또 건물만 조그맣게 있어요.

대신 병을 돌려보면 어깨에 화살 다섯 개가 튀어나와 있어요.
로칠드 가문 상징인데, 손으로 만져보면 오톨도톨해요.
라벨보다 이 병이 더 라피트답다고 느껴요.

포이야크 마을 와인이에요.

3. 라투르 1989

이 병은 사연이 있어요.
남편이 일본에서 근무할 때 친하게 지내던 일본 지인이 선물해준 와인이에요.

그래서 병목에 일본어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어요.
'果実酒(과실주)'라고 적힌 일본 수입 표시예요.
저는 이 스티커가 이 병의 이력서 같아서 좋아요.

라벨의 사자 올라간 탑 그림이 라투르의 상징이에요.
라투르는 프랑스어로 '탑'이라는 뜻이고요.
라피트랑 같은 포이야크 마을이에요.

다섯 병 중에 빈티지가 제일 오래됐어요.

4. 마고 2009


라벨에 그려진 건물이 실제 샤또 마고 건물이에요.
기둥 있는 하얀 저택이라 다섯 개 라벨 중에 제일 우아해 보여요.

다른 네 곳과 달리 와인 이름이 마을 이름이랑 같아요.
마고 마을에 있는 샤또 마고예요.

2009년은 보르도에서 좋은 해로 많이 꼽히는 빈티지예요.
옆의 오브리옹도 같은 2009년이에요.

5. 오브리옹 2009


나란히 세워놓으면 이 병만 모양이 달라요.
다른 병들은 어깨가 각진 보르도 병인데, 오브리옹은 어깨가 조금 둥글게 내려와요.
병에 'Pessac'이라고 새겨진 것도 보이고요.

이 Pessac이 중요한 포인트예요.
나머지 네 곳은 다 메독 지역인데, 오브리옹만 그라브 지역의 페삭에 있어요.
1855년 등급표에 메독이 아닌 곳으로 유일하게 들어간 와인이에요.

캡슐도 혼자 은색이라 줄 세우면 제일 눈에 띄어요.

6. 무통 로칠드 2006


무통은 라벨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1945년부터 해마다 유명 화가에게 라벨 그림을 맡기거든요.
그래서 빈티지마다 라벨이 다 달라요.
샤갈, 미로, 앤디 워홀, 그리고 1등급으로 올라간 1973년엔 피카소 그림까지 들어갔어요.
맛도 훌륭하지만, 무통은 라벨 때문에 모으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마시는 것보다 빈티지별로 라벨을 줄 세워 모으는 재미로 사는 와인이에요.

2006년 라벨은 영국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 그림이에요.
화분에 담긴 야자수와 얼룩말 머리.
5대 샤또 라벨 중에 유일하게 색이 들어간 그림이에요.

사실 우리 집 셀러에 무통은 이 한 병만 있는 게 아니에요.
같이 꺼내서 세워보면 이래요.

  • 2006년: 루시안 프로이드. 야자수와 얼룩말 머리
  • 1990년: 프랜시스 베이컨. 까만 바탕에 분홍빛 형체가 잔을 든 그림이에요. 라벨 위쪽에 베이컨을 기리는 문구가 손글씨로 적혀 있어요.
  • 2005년: 주세페 페노네. 포도 잎이랑 손가락 자국 같은 무늬가 찍혀 있어요.

같은 샤또, 같은 병인데 라벨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와인처럼 보여요.
1990년 병목에도 라투르처럼 일본어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
무통 1990이랑 2006은 남편 일본 근무 시절에 일본에서 직접 산 와인이에요.
라투르 1989는 선물로, 무통 두 병은 직접 사서. 다 일본에서 건너온 병이에요.

그중 1990년은 사실 빈 병이에요.
청사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지인들이랑 같이 마셨어요.
라벨도 아깝고, 그날 기념으로 빈 병을 그대로 모아뒀어요.

2005년만 한국에서 샀어요.
2005년은 보르도에서 손꼽히는 좋은 해라, 세 병 중에 빈티지로는 이 병이 제일이에요.

1973년에 1등급으로 올라간 그 샤또가 바로 여기예요.
라피트와 같은 로칠드 집안이고, 마을도 같은 포이야크예요.

해마다 유명 화가 작품이 들어가는 무통 라벨은 할 이야기가 많아서, 다음에 따로 한 번 더 풀어볼게요.

7. 다섯 병을 나란히 세워놓고 보니

저한테 이 다섯 병은 마시는 와인이라기보다 모으는 와인이에요.
라벨마다 이야기가 있고, 병 모양도 다 달라서
가끔 꺼내서 나란히 세워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요.

5대 샤또가 궁금하셨던 분들은
이름보다 라벨이랑 병 모양부터 한번 눈여겨보세요.
다섯 곳이 생각보다 다 다르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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