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 레드, 화이트, 샴페인 차이를 정리하고 나니 남편이 셀러에서 병을 몇 개 더 꺼내 왔습니다. "이번엔 이거 해 봐라" 하면서요. 식탁에 올려놓고 보니 네 병이 라벨 생김새부터 제각각입니다.
한 병은 CHATEAU, 한 병은 Domaine, 한 병은 영어로 Estate Grown, 마지막 한 병은 이탈리아 말이 빼곡합니다. 와인 이름 앞에 붙은 이 말들이 대체 뭔지, 저도 셀러를 채우면서 늘 궁금했습니다. 2009년쯤 셀러 선반에 이름표를 직접 만들어 붙일 때도 샤또가 뭔지 모르고 열심히 따라 적기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 네 병으로 샤또, 도멘, 와이너리가 각각 무슨 뜻인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한 줄로 정리하면
샤또, 도멘, 와이너리, 테누타는 모두 "포도를 키워서 와인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말을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게 부를 뿐입니다.
그래서 라벨 맨 앞 단어만 봐도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와인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는 샤또, 부르고뉴는 도멘,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는 와이너리나 에스테이트, 이탈리아는 테누타나 칸티나를 많이 씁니다.
식탁에 올려 둔 순서대로 한 병씩 보겠습니다.
첫 번째 병: 샤또 탈보 2018, 보르도의 '샤또'

첫 병은 라벨부터 남다릅니다. 종이 라벨이 아니라 병 유리에 바로 글씨와 나무 모양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셀러에서 꺼낼 때 손에 닿는 느낌도 매끈하니 다르더라고요.
맨 위에 적힌 CHATEAU(샤또)는 프랑스 말로 '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와인에서 샤또는 진짜 성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포도밭을 가지고 그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곳을 말합니다. 동화에 나올 것 같은 성을 가진 곳도 있지만, 평범한 건물에 이름만 샤또인 곳도 많습니다.
샤또라는 말은 주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씁니다. 샤또 탈보도 보르도에서도 생줄리앙이라는 마을에 있는 곳입니다.
보르도 이야기를 하면 1855년 등급이 빠질 수 없습니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보르도 와인에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등급을 매겼는데, 샤또 탈보는 여기서 4등급을 받은 곳입니다. 이 등급이 170년이 넘은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정리하면, 라벨에 Château가 보이면 보르도 와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 번째 병: 도멘 바슐레 쥬브레 샹베르탱 2015, 부르고뉴의 '도멘'

두 번째 병은 아래쪽에 Domaine Bachelet(도멘 바슐레)라고 필기체로 적혀 있습니다. 부르고뉴에서는 샤또 대신 이 Domaine(도멘)이라는 말을 씁니다.
뜻은 샤또와 거의 같습니다. 자기 밭에서 포도를 키워 직접 와인을 만드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차이라면 분위기입니다. 보르도 샤또는 넓은 땅을 한 집이 통째로 가진 경우가 많고, 부르고뉴는 작은 밭을 여러 집이 쪼개서 나눠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마을, 같은 밭 이름이 붙어 있어도 어느 집 도멘이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들 합니다. 같은 동네 배추로 담가도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과 비슷합니다.
이 병 라벨에는 재미있는 말이 몇 개 더 있습니다.
- Gevrey-Chambertin(쥬브레 샹베르탱): 지난 글 레드 와인에도 나왔던 그 마을 이름입니다
- Vieilles Vignes(비에이 비뉴): '오래된 포도나무'라는 뜻입니다
- Non Filtré(농 필트레): 거르지 않고 병에 담았다는 뜻입니다
- Propriétaire-Récoltant: 밭 주인이 직접 포도를 거둔다는 뜻입니다
- Mis en Bouteille à la Propriété: 그 집에서 직접 병에 담았다는 뜻입니다
라벨 아래 작은 글씨 몇 줄만 읽어도 이 집이 밭부터 병까지 직접 다 챙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병: 조셉 펠프스 인시그니아 2015, 미국의 '에스테이트'

세 번째 병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왔습니다. 라벨 위쪽 JOSEPH PHELPS(조셉 펠프스)가 와이너리 이름이고, 가운데 크게 적힌 INSIGNIA(인시그니아)가 와인 이름입니다.
미국, 호주, 칠레 같은 나라에서는 샤또나 도멘 대신 영어로 Winery(와이너리), Estate(에스테이트), Vineyards(빈야드) 같은 말을 씁니다. 와이너리는 와인 만드는 곳을 두루 부르는 가장 넓은 말이라서, 사실 샤또도 도멘도 다 와이너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병에서 눈여겨볼 말은 ESTATE GROWN(에스테이트 그로운)입니다. 자기네 밭에서 키운 포도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본 프랑스 라벨의 '직접 병에 담았다'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라벨에 포도 품종 대신 그냥 RED WINE이라고만 적혀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인시그니아는 보르도처럼 여러 포도를 섞어 만드는 와인인데, 1974년 빈티지부터 품종 이름 대신 자기만의 이름을 붙여 내놓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런 방식을 일찍 시작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 번째 병: 티냐넬로 2018, 이탈리아의 '테누타'

마지막 병은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왔습니다. 크게 적힌 TIGNANELLO(티냐넬로)가 와인 이름이고, 맨 아래 ANTINORI(안티노리)가 만든 집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포도밭과 와인 만드는 곳을 Tenuta(테누타), Cantina(칸티나) 같은 말로 부릅니다. 티냐넬로라는 이름도 원래 안티노리 가문이 가진 밭 이름에서 왔습니다.
이 병은 라벨에 이탈리아 말로 이야기가 꽤 길게 적혀 있습니다. 처음 만든 해가 1971년이라는 것, 안티노리 가문이 1385년부터 와인을 만들어 왔다는 것, 그리고 1975년 빈티지부터 이탈리아 포도인 산지오베제에 카베르네를 조금 섞기 시작했다는 내용입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포도에 프랑스 포도를 섞는 건 당시로서는 꽤 파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티냐넬로는 '슈퍼 투스칸'이라고 불리는 와인들의 시작으로 자주 이야기됩니다. 1385년이면 우리나라는 고려 말인데, 그때부터 와인을 만든 집이라니 라벨 읽다가 한참 웃었습니다.
네 병 한눈에 비교
| 와인 | 나라·지역 | 라벨에서 볼 단어 | 뜻 |
|---|---|---|---|
| 샤또 탈보 2018 | 프랑스 보르도 | Château | 포도밭을 가진 와인 양조장 |
| 도멘 바슐레 2015 | 프랑스 부르고뉴 | Domaine | 밭을 가지고 직접 만드는 집 |
| 인시그니아 2015 | 미국 나파 밸리 | Estate Grown | 자기 밭에서 키운 포도 |
| 티냐넬로 2018 | 이탈리아 토스카나 | Antinori(테누타) | 가문이 가진 밭과 양조장 |
나라별로 자주 쓰는 말을 하나 더 붙이면 스페인은 Bodega(보데가), 독일은 Weingut(바인구트)입니다.
마트 와인 코너에서 써먹는 법
네 병을 보고 나니 마트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게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라벨에서 가장 큰 글씨나 맨 위 단어를 보세요. Château면 보르도, Domaine이면 부르고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라벨 아래 작은 글씨를 보세요. Mis en Bouteille au Château, Mis en Bouteille à la Propriété, Estate Grown, Estate Bottled 같은 말이 있으면 밭부터 병까지 한 집에서 챙긴 와인입니다.
셋째, 성 그림이나 멋진 라벨에 너무 끌리지 마세요. 그림이 화려하다고 맛이 보장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오늘 본 샤또 탈보처럼 글씨와 그림 하나만 새긴 수수한 병이 더 오래된 이름을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네 병이 하는 말은 결국 같았습니다
네 병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니 결국 하는 말은 다 같았습니다. "우리 밭에서 우리가 키워 우리가 만들었다." 그걸 프랑스는 샤또와 도멘으로, 미국은 에스테이트로, 이탈리아는 가문 이름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오늘 라벨에 계속 나온 2015, 2018 같은 숫자, 빈티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같은 와인인데 해마다 왜 값이 다른지, 셀러에 있는 병들로 이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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