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이건 무슨 포도예요?"와 "몇 년도 거예요?"입니다. 앞의 것이 포도 품종, 뒤의 것이 빈티지입니다.
그런데 셀러에서 병을 꺼내 라벨을 보면, 연도는 큼직하게 적혀 있는데 품종은 어디에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꺼낸 세 병도 그렇습니다. 보르도 레드 한 병, 부르고뉴 레드 한 병, 부르고뉴 화이트 한 병인데, 세 병 모두 연도는 있고 품종은 없습니다.
병마다 앞 글에서 말씀드린 투명 비닐이 그대로 씌워져 있어 조금 번들거리지만, 라벨 글씨는 잘 보입니다. 오늘은 이 세 병으로 품종 찾는 법과 빈티지 읽는 법을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품종은 지역 이름으로 찾습니다
프랑스는 지역마다 키울 수 있는 포도를 법으로 정해두었습니다. 그래서 라벨에 지역 이름만 적어도 어떤 포도가 들어갔는지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 칠레, 호주 와인은 라벨에 품종을 크게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트에서 '까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라고 큼직하게 쓰인 병은 대부분 이쪽입니다.
자주 보게 되는 프랑스 두 지역만 먼저 알아두면 편합니다.
| 라벨에 보이는 지역 | 레드 주요 품종 | 화이트 주요 품종 |
|---|---|---|
| 보르도 (포이약, 마고, 생테밀리옹 등) |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를 섞어 씀 | 소비뇽 블랑, 세미용 |
| 부르고뉴 (쥬브레 샹베르탱, 모레 생 드니, 퓔리니 몽라셰 등) | 피노 누아 | 샤르도네 |
빈티지는 포도를 딴 해입니다
빈티지는 병에 담은 해도, 판매한 해도 아니고 포도를 수확한 해입니다. 2009라고 적혀 있으면 2009년 가을에 딴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뜻입니다.
빈티지가 중요한 이유는 날씨 때문입니다. 같은 밭,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그해 햇볕이 충분했는지, 비가 많이 왔는지에 따라 포도 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와인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 지역 몇 년도는 좋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참고로 샴페인은 여러 해 와인을 섞어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연도가 없는 병이 흔합니다. 이런 병은 NV(논빈티지)라고 부릅니다.
보르도 레드: 샤또 라피트 로칠드 2009

품종부터 보면 라벨 아래쪽에 PAUILLAC(포이약)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포이약은 보르도에서도 자갈이 많은 땅이라 카베르네 소비뇽이 잘 자라는 마을입니다. 그래서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에 두고 메를로 같은 품종을 함께 섞어 만듭니다.
보르도는 이렇게 여러 품종을 섞는 것이 기본입니다. 섞는 비율은 해마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데, 라벨에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껍질이 두꺼워 색이 진하고 떫은맛이 강한 편이라, 오래 두고 숙성시키는 와인이 많습니다.
빈티지는 라벨의 2009입니다. 2009년 보르도는 날씨가 좋았던 해로 많이 꼽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병은 연도가 라벨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병 어깨에 2009와 화살 다섯 개 문양이 유리에 직접 새겨져 있습니다. 위조품을 막기 위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진 찍으려고 불빛에 비춰 보니 손끝에 만져질 만큼 도드라져 있었습니다.
뒷라벨을 돌려 보면 한국 수입사 한글 스티커가 붙어 있고, 병목에는 일련번호가 찍힌 작은 스티커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2009년 라피트라도 어느 나라를 거쳐 들어왔는지는 이 뒷라벨 스티커로 알 수 있습니다.
부르고뉴 레드: 페로 미노 모레 생 드니 1er Cru 라 리오트 2018

품종은 지역에서 바로 나옵니다. MOREY-SAINT-DENIS(모레 생 드니)는 부르고뉴 마을이고, 부르고뉴 레드는 거의 피노 누아 한 가지로 만듭니다.
피노 누아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반대에 가깝습니다. 껍질이 얇아 색이 맑고 떫은맛도 부드러운 편입니다. 대신 키우기가 까다로워 날씨를 많이 탄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르고뉴는 빈티지에 따라 맛 차이가 더 크게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빈티지는 라벨 아래 2018입니다. 그 아래 '2664 bouteilles récoltées'는 이 밭에서 그해 2,664병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같은 밭이라도 해마다 수확량이 달라서, 이렇게 병 수를 적어두는 생산자들이 있습니다.
부르고뉴 화이트: 퓔리니 몽라셰 1er Cru 라 가렌 2018

이 병은 첫 글에서 화이트 대표로 한 번 소개했던 병입니다. 그때는 색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품종과 빈티지만 보겠습니다.
품종은 PULIGNY-MONTRACHET(퓔리니 몽라셰)가 부르고뉴 마을이니 샤르도네입니다. 부르고뉴는 레드면 피노 누아, 화이트면 샤르도네라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샤르도네는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고소하고 부드럽고, 스테인리스 통에서 만들면 상큼하고 깔끔해서 만드는 방식에 따라 맛 폭이 넓습니다.
빈티지는 2018로, 바로 옆 페로 미노와 같은 해입니다. 같은 부르고뉴, 같은 2018년이라도 한 병은 피노 누아 레드, 한 병은 샤르도네 화이트입니다. 빈티지가 같다고 맛이 비슷한 게 아니라, 품종과 밭이 먼저라는 걸 나란히 놓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좋은 빈티지면 무조건 좋은 걸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날씨가 좋았던 해의 와인은 힘이 넘쳐서 오히려 몇 년 더 기다려야 맛이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평범한 해의 와인은 일찍 마시기 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빈티지는 "좋은 해냐"와 함께 "지금 마시기 좋은 때냐"를 같이 봐야 합니다.
와인 품종과 빈티지 정리
라벨을 볼 때는 이 순서로 보시면 됩니다.
첫째, 품종이 적혀 있는지 봅니다. 미국, 칠레, 호주 와인은 여기서 끝납니다.
둘째, 없으면 지역 이름을 찾습니다. 보르도는 섞은 와인, 부르고뉴는 레드면 피노 누아, 화이트면 샤르도네입니다.
셋째, 연도를 찾습니다. 그해 포도를 딴 해이고, 연도가 없으면 여러 해를 섞은 와인입니다.
품종은 와인의 성격을, 빈티지는 그해의 날씨를 알려줍니다. 다음에 와인 한 병 고르실 때 이 두 가지만 먼저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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