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저녁을 좀 일찍 먹었어요. 소고기 굽는 날이면 손이 먼저 레드 쪽으로 가는데, 오늘은 셀러에 있던 화이트 한 병을 꺼냈어요. 고기엔 레드가 답이라고들 하잖아요. 저도 늘 그렇게 먹어 왔고요. 그런데 양념 없이 소금만 친 고기라면 화이트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나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늘 같은 저녁에는 이쪽이 더 맞았다 싶어요.
1. 오늘 꺼낸 와인, 코르통 샤를마뉴 2020
올리비에 르플레브 코르통 샤를마뉴 그랑 크뤼 2020이에요. 셀러 안쪽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던 녀석이에요.
코르통 샤를마뉴는 부르고뉴 코트 드 본에 있는 화이트 그랑 크뤼예요. 부르고뉴는 밭마다 등급을 매기는데, 그중 맨 위가 그랑 크뤼예요. 라벨에 Grand Cru라고 적혀 있으면 마을 이름이 아니라 그 밭 이름 하나를 걸고 나온 와인이라는 뜻이에요. 품종은 샤르도네 하나만 써요.
평소 마시는 샤르도네랑 같은 품종인데도 이름값이 다른 건, 결국 어느 땅에서 자랐느냐 차이예요. 부르고뉴 사람들이 그렇게 밭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가 여기 있더라고요.

2. 이름에 왜 샤를마뉴가 붙었을까
이름에 들어간 샤를마뉴는 그 샤를마뉴 대제가 맞아요. 이 언덕에 원래는 레드 포도가 많았는데, 나이 든 황제의 하얀 수염에 레드 와인이 자꾸 물드니까 왕비가 화이트를 심자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져요.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와인 이름 하나에 이런 얘기가 붙어 있으니 한 잔 따를 때 괜히 한 번 더 라벨을 보게 돼요.
재밌는 건 같은 코르통 언덕에서 레드도 나온다는 거예요. 레드는 그냥 '코르통', 화이트는 '코르통 샤를마뉴'라고 불러요. 언덕 하나가 알록스 코르통, 페르낭 베르쥘레스, 라두아 세리니 세 마을에 걸쳐 있어서, 같은 이름이라도 어느 쪽 비탈에서 왔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해요.
3. 뒷 라벨에서 확인한 것
만든 곳은 올리비에 르플레브예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퓔리니 몽라셰 마을에 있는 집이에요. 직접 키운 포도뿐 아니라 다른 농가 포도도 사서 와인을 만드는 '네고시앙' 방식이라, 한 집에서 여러 마을, 여러 밭의 와인을 골고루 내놓아요.
뒷 라벨에는 '포도밭, 와인, 호텔과 레스토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와인만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을에서 호텔이랑 레스토랑도 함께 하는 곳이라 그렇대요.
| 항목 | 내용 |
|---|---|
| 와인 | 코르통 샤를마뉴 그랑 크뤼 |
| 생산자 | 올리비에 르플레브 (퓔리니 몽라셰) |
| 빈티지 | 2020 |
| 품종 | 샤르도네 |
| 도수 | 13.5% |
| 권장 음용 시기 | 2025년부터 2030년 |
| 서빙 온도 | 12도에서 14도 |
마시기 좋은 때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라고 적혀 있어요. 지금이 2026년이니까 딱 그 안에 들어와 있었던 거죠. 셀러에 두고 언제 열까 고민만 하다 보면 이런 숫자를 놓치기 쉬운데, 뒷 라벨에 이렇게 적어 주니 고맙더라고요.
2020년은 부르고뉴가 덥고 건조해서 수확을 꽤 일찍 한 해로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이 해 화이트는 너무 오래 묵히기보다 지금쯤 열어 마시기 좋다는 얘기가 많아요.

4. 서빙 온도랑 잔
라벨에 적힌 서빙 온도는 12도에서 14도예요. 화이트라고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차갑게 따르면 이것보다 훨씬 낮아요. 와인 셀러는 보통 이 근처 온도로 맞춰 두니까, 셀러에서 꺼낸 화이트는 바로 따도 괜찮아요. 냉장고에 넣어 뒀던 거라면 마시기 20분에서 30분 전에 미리 꺼내 두는 게 좋아요.
잔은 볼이 넓은 부르고뉴 잔을 꺼냈어요. 사진 보면 잔이 꽤 크죠. 화이트라고 작은 잔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샤르도네는 넓은 잔에 따라야 향이 제대로 올라와요.
5. 소고기 소금구이, 이렇게 차렸어요
고기는 양념 없이 소금만 살짝 쳐서 구웠어요. 화이트랑 같이 먹을 거라 간을 세게 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그릴팬 하나 올려서 식탁에서 바로 구워 가며 먹었어요.
저는 고기를 새김치랑 같이 먹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참기름장에 콕 찍어 먹는 거요. 이 두 가지는 빠지면 섭섭해서 오늘도 챙겼어요. 옆에는 오이 몇 조각, 팽이버섯 조금, 밥은 한 공기만 놨어요. 이것저것 잔뜩 차리기보다 오늘은 과하지 않게 먹고 싶었거든요.

6. 고기엔 레드라는 공식, 화이트로 먹어 보니
양념이 진한 고기였으면 화이트가 묻혔을 것 같아요. 달달한 갈비 양념이나 매콤한 양념은 와인보다 양념 맛이 먼저 오니까요. 그런데 소금구이는 고기 맛이 담백하게 올라와서 화이트가 밀리지 않더라고요.
새김치랑 같이 먹을 때도 괜찮았어요. 묵은지처럼 시고 진한 김치였으면 와인이랑 부딪혔을 텐데, 새김치라 아삭하고 가벼워서 같이 먹기 편했어요. 참기름장에 찍은 고기도 고소한 맛이 그대로 살아서 한 점 먹고 한 모금 마시는 흐름이 자연스러웠어요.
무거운 레드에 고기를 잔뜩 먹는 날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일찍, 과하지 않게 먹은 저녁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정리해 보면 이런 경우엔 화이트도 충분히 어울려요.
- 양념 없이 소금, 후추 정도만 한 소고기
- 새김치, 겉절이처럼 가볍고 아삭한 김치
- 참기름장처럼 고소한 쪽으로 찍어 먹는 소스
- 많이 먹기보다 가볍게 먹고 싶은 날
반대로 양념갈비, 불고기, 묵은지 같이 맛이 진한 쪽이라면 저는 다시 레드를 꺼낼 것 같아요.
7. 다음에 해보고 싶은 것
고기엔 무조건 레드라는 생각을 오늘 조금 내려놓게 됐어요. 다음 소금구이 날엔 좀 더 가벼운 샤르도네로도 같은 상을 차려서 비교해 보고 싶어요.
셀러에 화이트가 한 병 있다면, 다음 소금구이 날에 한 번 꺼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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