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손님을 집으로 불렀어요.
음식은 세 가지만 했어요.
잡채, 어향가지, 그리고 스테이크.
한식, 중식, 양식이 한 상에 다 올라간 셈이에요.
와인은 셀러에서 네 병을 꺼냈어요.
음식 사진은 정신없이 먹느라 하나도 못 찍었고,
다 마시고 나서 빈 병만 겨우 세워놓고 찍었네요.
1. 첫 병은 무조건 샴페인

앙드레 클루에 드림 빈티지 2018 브뤼.
샹파뉴 부지(Bouzy) 마을의 생산자인데,
이 동네가 피노누아로 유명한 곳이라 샴페인인데도 맛이 꽤 묵직한 편이에요.
손님 오면 첫 잔은 늘 기포 있는 걸로 시작해요.
입이 개운해지고 분위기도 금방 풀리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의외였던 게,
이 샴페인이 세 가지 음식에 다 맞았어요.
잡채의 달큰짭짤한 간장 맛,
어향가지의 새콤달콤 매콤한 소스,
스테이크의 기름기까지.
산미랑 기포가 매번 입을 씻어주니까
다음 한 입이 계속 맛있더라고요.
뭘 차릴지 모를 때는 샴페인 한 병이면 웬만큼 다 된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느꼈어요.
2. 두 번째는 가벼운 피노누아
알렉스 감발 레 되 파피 부르고뉴 피노누아 2024.
부르고뉴 본(Beaune)에 있는 생산자의 기본급 와인이에요.
2024년이라 아주 어리고 가벼운 와인이에요.
레드라서 처음엔 잡채랑 가지튀김에 괜찮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맞았어요.
묵직하지 않으니까 튀김 먹고 한 모금 마셔도 입이 텁텁하지 않더라고요.
샴페인 마시다가 바로 진한 레드로 넘어가면 맛이 확 세게 느껴지잖아요.
그 사이에 이렇게 가벼운 레드를 하나 두니까 넘어가는 게 훨씬 편했어요.
3. 스테이크는 제브레 샹베르탱

피에르 포넬 제브레 샹베르탱 2020.
제브레 샹베르탱은 부르고뉴 코트 드 뉘에 있는 마을 이름이에요.
같은 피노누아인데 앞의 감발보다 훨씬 진하고 단단해요.
스테이크가 나올 때쯤 열었는데 이게 제일 잘 맞았어요.
고기 기름이랑 와인의 산미, 흙내음 같은 향이 같이 가니까
고기 한 점, 와인 한 모금이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남편은 이날 이 와인이 제일 좋았대요.
4. 마지막은 샤또 탈보 2019
마지막 병은 보르도 생쥘리앙의 샤또 탈보 2019.
라벨에 쓰인 대로 1855년 그랑 크뤼 클라세(보르도 공식 등급) 와인이에요.
부르고뉴 두 병을 지나 탈보로 오니 확실히 결이 달라요.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이라 더 묵직하고 탄닌이 단단해요.
스테이크 먹으면서 제브레랑 같이 열어두고 번갈아 마셨는데,
진한 고기랑 마시기엔 둘 다 잘 맞았어요.
손님들은 이 와인을 제일 반겼어요.
탈보는 자주 마셔봐서 익숙한 맛이라 그런지
"역시 이거지" 하는 분위기였어요.
같은 날 같은 상에서 남편은 제브레, 손님은 탈보.
좋아하는 와인이 이렇게 갈리는 것도 재밌었어요.
5. 이번에 정한 순서, 다음에도 이렇게
이날 연 순서를 정리하면 이래요.
- 샴페인: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식에
- 가벼운 피노누아: 잡채, 튀김 요리
- 진한 피노누아(제브레 샹베르탱): 스테이크
- 보르도(탈보): 스테이크
가볍고 산뜻한 것부터 묵직한 것으로.
이 순서만 지켜도 손님 초대 때 와인 고르기가 훨씬 편해요.
음식이 한식, 중식, 양식으로 섞여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샴페인 한 병 먼저 열어두고, 고기 나올 때 레드 하나 꺼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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